고나수넷

객 004

분류없음2015.04.21 01:19

1. 언니네이발관의 마지막 정규 앨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러했지만 오늘 피타입의 쇼미더머니 참가 소식에 다시 한 번 느끼는 감정은, 내 어린 시절 기억의 파편 한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다. 어스름한 새벽, 버스 뒷켠, 언덕길, 아무도 없는 교실, 정적 속에서 각인되었던 그것들이. 서로 다른 소식에 같은 텍스트로 적어낼 수는 있을지언정 두 감정의 거리는 가깝지 않다. 한쪽은 아직 여러 가지 상념이 엉켜있다면 다른 한쪽은 비탄에 가깝다. 자본의 뒤안길에 내던져진 씬이 자본과 결탁했을 때는 우리는 잃어버릴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달관한 표정으로 영원히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과 치부를 드러내는 게 자본의 속성이라는 것을 알지라도 ATCQ 25주년에 펼쳐지는 이 촌극은 과거와 비슷한 흐름 속에 머물러있다. 자본의 속성에 맞춰진 그 쇼는 누군가의 잇속을 챙기고 내가 간직했던 아름다운 것들에 침을 뱉는다. 상념이 가득하고 끔찍한 밤이다.

 

2. 그럴만한 사유가 있어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별수 없이 읽었다만 이 책은 감정의 파편들이 얼기설기 엉켜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있다. 그런 덩어리가 때론 특별한 유기체가 되어 우리 가슴 속에 뛰어 들어오지만 이번엔 균열부터 눈에 들어온다. 장점 중에 하나라면 우리가 가진 다양한 감정에 빗대어 고전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인데 고전의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대중서적은 얼마든지 있다. 단호하리만큼 단정 지어진 감정들, 그리고 그에 걸맞는 언어로 점철된 그의 문장들은 고전에 감정을 끼워 맞춘 건지 감정에 고전을 끼워 맞춘 건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몇 가지 고전과 그에 걸맞는 감정들 또한 없는 것은 아니나 48가지 감정을 고전에 빗대어 표현하려 총력을 기울인 목적은 도리어 강박으로까지 느껴진다. 때문에 표현은 단호해지고 스피노자의 망령만 책 속에 떠돌고 있다. 책을 덮자 강신주와 민음사라는 두 거인만 남았다.

 

3. 책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재작년쯤 <예술의 사회 경제사>를 읽었을 때의 기억. 우리의 예술현실을 보더라도 자본이나 대중의 수요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인데 과거에도 역시나 시대적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문화예술 관련 서적들은 대부분 예술에 내적요인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의 경우 사회적이면서 경제적 측면, 즉 수요의 측면을 꽤 상세히 다루고 있다. 말 그대로 불편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이자 대중이 불편해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생활고 때문에 자살을 하거나 알콜중독에 빠지거나. 달빛요정이 생활고 때문에 자살을 했어도 많은 이들이 그의 음악은 즐겨듣되 눈앞의 현실은 몰랐다. 시장이 예술가의 생계를 쥐락펴락하는 이런 불편한 진실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은 폭넓은 이야기를 굉장히 온건한 어조로 이야기하지만 조금 더 직설적으로 받아들이자면 예술은 고상하고 아름다우니까 그냥 찬미하고 예술의 수요자로 남을 것이냐 아니면 예술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보고 현실을 받아들이느냐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라면 당연히 후자를 택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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